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니지 전투 (문단 편집) === [[추축국]]의 상황 === 10척의 유조선 가운데 1척만 남은 상황에서 전차[* [[북아프리카 전선]]에서는 지형이 사막인지라 전차는 전투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.]를 기동할 연료[* 롬멜은 부족한 연료를 최대로 활용했지만 아르님이 그런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.]마저 부족했고 전차마저 부족했다. 수적으로도 연합국이 배로 많은 상황이었다. 설상가상으로 동맹국인 이탈리아마저 불안한 상황이었고 연이은 패배로 사기마저 떨어진 상태였다. '''거기에다 롬멜이 없었다.'''[* 이는 군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.] 아직도 독일군 5개 사단과 이탈리아 9개 사단이 남아있긴 했지만 물자가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영국군과 미군을 막아낼 충분한 병력이 되지 못했다. 영국 군함들은 계속해서 보급함들을 침몰시켰고 수송기 또한 계속해서 격추되고 있었다.[* 당시 이탈리아 해군의 수송전단 70% 정도가 이 북아프리카 전선을 보급하기 위해서 손실되었다. 이탈리아 해군은 몸을 던져가며 보급을 하려고 했지만 피해는 증폭되었다.]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레트 방어선이 전술적으로 뛰어났고 연합군[* 공군과 육군의 협조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.]에 비해 추축군은 서로 연락이 잘 통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다. 게다가 [[횃불 작전]]으로 [[비시 프랑스]]가 영미 연합국에게 서아프리카를 탈탈 털려버리고 비시 프랑스가 정신 없는 틈을 타 독일-이탈리아는 비시 프랑스령 튀니지 통감인 장 마리 에스테바에게 협력을 강요해 튀니지는 이탈리아가 사실상 점령하게 된다. 이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추축국 내부에서도 갈등이 많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